광영공익재단 설립자 허광욱 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글을 씁니다.
저는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덕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겨우 먹고 사는 소농 집안이었습니다. 어릴 적 학질에 걸려도 키니네(학질약)를 살 수 없는 형편이어서 그저 아픔을 참았습니다. 아버지께 학비를 타려면 몇 번이고 울면서 졸라야 했습니다. 유교 선비 집안이며 독립유공자 몽회(夢會) 허업(許業) 선생의 아들인 아버지는 일제 치하의 핍박과 6∙25 한국전쟁의 고난을 겪으면서도 저의 배움과 집념을 뒷바라지 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와 행정대학원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생 지도에 시간을 쏟고, 나의 공부는 늦은 밤 시작해 하루 3~4시간만 잤습니다. 그러다가 몸이 약해져 폐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을 수없이 원망도 했습니다.
1962년 가을 아내 김영순과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남원군 주생면 지당리에서 태어났으며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한 교사였습니다. 아내도 학구열이 강하여 결혼 후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숙명여대 약학과를 다니다 학교의 문제로 동덕여대 약학과로 옮겨 졸업하였고 약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잘 다스리는 것을 중시하여 약국 개업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한석유공사(현 SK에너지) 창립사원으로 입사해 부사장까지 역임한 뒤 삼성그룹으로 옮겨 10여년 근무하고 퇴직했습니다. 아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검소한 살림과 저축으로 재산을 일구었습니다. 남편을 지극한 사랑으로 내조하였고, 어려움에 처한 이에게는 선뜩 경제적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저는 아내의 넓은 마음과 사랑에 감복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어려웠던 과거를 뼈아프게 느껴서 2015년 제 나이 팔순에 가난한 청소년을 돕고자 광영공익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저희 이름(허광욱, 김영순)에서 한 글자씩 따왔습니다.
하나님은 이 착한 아내를 2019년 봄에 데려갔습니다. 저의 60여 년간 아내요, 친구요, 어머니요, 스승이었던 이를 잃었습니다. 참된 기독교 신자인 아내가 천국에서 즐겁게 영생할 것을 믿으며, 아내가 남긴 얼마간의 재산을 추가로 재단에 출연하고자 합니다. 저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자기 기업을 운영해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직장인으로 급여를 저축하여 재산을 모았습니다. 더군다나 직장생활 중 부정하게 돈을 모은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재단에 출연한 재산은 부끄러움 없는 값진 것입니다.
아내 김영순의 착하고 고결한 마음이 학생에게 작은 온기로 전해지기 바랍니다. 김영순의 착한 삶이 사회 곳곳에 사랑의 열매를 맺는 한 알의 씨앗이 되는 것이 제 남은 소망입니다.
지금 학생이 본의 아니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해서는 안되며 굳은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헤쳐나가기 바랍니다. 이번에 주는 장학금이 적지만 필요한 곳에 긴요하게 사용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